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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신문 등산지도/♣ 국제신문 전남

고흥 천등산

by 강릉벽소령 2014. 10. 31.

 

 

등불 천 개 밝혔던 스님들 '월각문' 지나 하늘에 닿았을까

 

 

 

  전남 고흥 땅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곳이다. 흔히 '고흥반도'로 불리며 경남의 '고성반도'에 비견되기도 한다. 서쪽은 득량만을 사이에 두고 장흥 관산읍과 보성을, 동쪽은 여자만과 순천만을 사이에 두고 여수반도와 마주한다. 그리고 남쪽으로 수많은 섬과 바다가 펼쳐진다. 고성반도 남쪽 바닷가에 구절산 거류산 벽방산 등 다도해 조망이 좋은 산들이 즐비하듯이 고흥에도 조망미와 암릉을 타는 맛을 고루 갖춘 명산들이 여럿 솟아 있다. 가장 유명한 고흥의 산으로는 역시 호남 4대 사찰 중 하나인 능가사를 품고 있는 팔영산(八影山·608.6m). 이 산은 도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거금도에 솟은 적대봉(積臺峰·592.2m) 역시 산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다.

   
따뜻한 봄바람을 맞으며 산행에 나선 산꾼들이 전남 고흥 천등산 정상 아래 신선대 부근을 지나고 있다. 오른쪽 돌탑이 서 있는 곳이 정상이고 그 왼쪽 암릉은 천등산 남벽이다. 하산길에 저 암릉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고흥의 산을 이야기할 때 천등산(天登山·553.5m)을 빼놓을 수 없다. 고흥에서 팔영산, 적대봉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이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정상부에서 바라본 낙조와 다도해 풍광이 가히 환상적인 데다 봄철 철쭉 산행지로도 유명하다. 게다가 한라산 남벽을 연상케 할 정도로 거대한 남쪽 절벽은 '낮은 산'이라고 방심하고 찾아온 산꾼들의 기를 질리게 한다. 그뿐인가.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무수히 흩어져 있어 산 타는 재미를 더하고 그 바위 수만큼이나 많은 전설과 설화가 재미난 이야깃거리를 끝없이 제공해 준다. '하늘로 오르는 산'이기도 하고 스님들이 밝힌 '천 개의 등불이 반짝이는 산'이기도 한 고흥의 명산 천등산을 '근교산 시리즈'에서 그동안 한 차례도 소개하지 않았다는 것이 의아스러울 지경이다.

 4~5개 코스 중 풍양면 송정리 송정마을을 기점으로 월각산(月角山·일명 딸각산·429m)을 거쳐 천등산에 올랐다가 사스목재를 지나 출발지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를 택했다. 특히 천등산 남서쪽 아래 있는 월각산을 포함시킨 이유도 분명히 있다. 월각산에는 월각문이라는 석문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월각문의 존재로 인해 산꾼들 사이에는 '월각산을 거치지 않는다면 천등산을 반만 오른 셈'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전체 산행은 송정마을 풍안경로정~등산로 입구 이정표~가시나무재~월각문~월각산(딸각산) 정상~앙천잇재(임도 삼거리) 갈림길~신선대(마당바위)~천등산 정상~(암릉 거쳐) 갈림길~사스목재~천등마을~송정교~송정 버스정류소로 이어지는 8㎞ 구간이다. 걷는 시간만 3시간10분, 휴식과 식사 시간을 포함하면 넉넉 잡아 4시간 정도 걸린다. 부산에서 편도 3시간이나 걸리는 이동 시간과 거리를 고려할 경우 적당한 산행 시간이다.

송정 버스정류소에서 내려 송정교회 앞을 거쳐 풍안경로정 쪽으로 길을 잡는다. 경로정에서 30m쯤 가다가 갈림길에서 왼쪽 송정마을 쪽으로 튼다. 남쪽 풍남항을 넘어 불어오는 해풍의 감촉이 부드럽고 포근하다. 봄바람. 길가 논에는 갓 새싹을 틔운 마늘과 파가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며 초록으로 빛난다. 들길에서 보이는 정면 가장 높은 곳의 바위투성이 산이 천등산이고 그 오른쪽 앞에 솟은 암봉이 '딸각산'으로 불리는 월각산, 왼쪽 끝에 우뚝 솟은 바위산이 '벼락산'으로도 불리는 별학산이다.

3분 후 작은 개울을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길을 잡는다. 노란색 '등산로→' 표지판을 50m쯤 지나 오른쪽으로 꺾는다. 곧바로 산허리로 붙은 임도를 따라 200m쯤 오르면 콘크리트 포장이 끝나고 포근한 흙길이 이어진다. 눈앞에 등산로를 표시하는 이정표가 있다. 본격 산행이 시작되는 지점. 이정표를 따라 산길로 든다.

등산로가 깔끔하게 정비돼 있어 걷기 편하다. 작은 지능선을 따라 15분가량 오르면 해발 240m인 작은 봉우리 갈림길에 닿는다. 가시나무재라 불리는 곳. 주변이 시원하게 트여서 남서쪽의 거금도 적대봉과 소록도를 비롯한 다도해의 섬들이 훤히 드러난다. '딸각산 0.5㎞'라는 이정표를 한 번 보고 고개를 들어 온통 바위로 뒤덮인 월각산 정상을 보면 '흠, 실제로는 1㎞ 이상 되겠군'이라는 생각이 든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20분쯤 가면 갑자기 산행로 각도가 높아지면서 가팔라진다. 이마와 등줄기가 어느새 땀에 젖는다. 10분쯤 치고 올랐을까. 오른쪽에 거대한 석문이 나타난다. 깎아지른 암벽 앞에 높이 20m는 됨직한 또 하나의 바위가 솟았는데 이 두 개의 수직 암벽 위에 커다란 바위가 얹혀있다. 충북 단양 도담삼봉 인근에 있는 석문을 축소해 놓은 것 같은 장관이다. '월각문'이라 불리는 이 석문은 송정마을과 천등마을에서 바라볼 때 그 문 사이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천등산 산행에서 경유하는 월각산(딸각산)의 월각문.
월각문 사이로는 등산로가 없어 왼쪽으로 우회해 오른다. 바위투성이 길을 올라 월각문 상단부에 이르면 보통 성인 남자 키보다 높은 둥근 바위를 만난다. 영락없는 '흔들바위'다. 힘껏 밀어보니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월각문 위에 또 다른 바위가 길을 막아서지만 다시 왼쪽으로 우회해서 오른다.

월각문에서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월각산 정상까지는 5분이면 족하다. 동북쪽에 천등산 정상부 남벽이 눈에 들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바위투성이 능선과 멀리 다도해까지, 서쪽으로는 송정리 들판과 별학산 암봉이 펼쳐지는 풍광이 기막히다. 정상에는 역시나 '딸각산 정상 429m'라는 표지판이 있다. 사실 월각산이라는 이름은 원래 이 산을 오를 때 바위를 밟으면 "딸각딸각" 소리가 난다고 '딸각산'이라 불렸던 것이 '달각산'으로 바뀌었고 다시 한자 표기를 하려다 보니 '달 월(月)'자와 '뿔 각(角)'자를 붙인 것이라고 한다. 이 지역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도, 이정표 표기도 모두 옛 이름인 '딸각산'이다.

감시초소 뒤로 난 길을 따라 5분만 내려서면 통신안테나 앞에서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따라 5분쯤 더 가면 승용차 통행도 가능한 임도 삼거리인 앙천잇재. 간이 화장실과 주차 공간이 있다. 앙천잇재 삼거리에서 왼쪽으로는 사동마을과 천등마을 송정마을까지 임도로 연결되고 오른쪽 임도를 따르면 철쭉공원을 넘어 신호리까지 갈 수 있다. 취재팀은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50m쯤 가다가 이정표를 보고 왼쪽 능선길로 들어선다. 임도를 따라 철쭉공원까지 가는 우회로보다 거리가 짧고 산행의 맛도 더 좋기 때문이다. 철쭉이 붉게 피어나는 4~5월 산행이라면 철쭉공원으로 길을 잡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

   
앙천잇재에서 신선대로 가는 길에 바라본 천등산 남벽.
완만한 능선길 왼쪽으로 보이는 천등산 남벽은 차라리 거대한 '바위 병풍'이다. 철쭉나무가 무성한 능선길을 따라 20분가량 오르면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 닿는다. 오른쪽은 철쭉공원으로 내려가는 길. 왼쪽으로 10여 m 가면 마당바위 또는 신선대로 불리는 너럭바위가 있다. 금탑사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인데 점심 식사 자리로 인기가 높다. 진행 방향 가까운 곳에 돌탑이 서 있는 정상이 보이고 그 왼쪽으로 깎아지른 남벽이 시원스럽게 드러나 멋진 경치를 이룬다.

신선대에서 돌탑이 서 있는 정상까지는 5분이면 족하다. 정상석은 따로 없지만 옛날 봉화대가 있었던 곳이니만큼 주변 풍광만은 거칠 것이 없다. 동북쪽으로 8개 암봉이 올록볼록하게 솟은 팔영산도 훤히 드러난다. 암릉 구간으로 들어서야 하는 하산길 초입은 빼어난 경치와 암릉 산행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구간이다. 오르락내리락을 여러 차례 반복하며, 때로는 아찔하기까지 한 암릉구간을 통과하면 10분 후 안내 리본이 여러 개 달린 갈림길이다. 직진하면 안지재를 거쳐 사동마을로 내려가거나 미인치를 지나 조계산까지 이어서 산행할 수 있지만 왼쪽 내리막으로 길을 잡는다. 아래쪽 능선 끝 먼 곳에 우뚝 솟아난 별학산이 보인다.

   
천등산 암릉지대. 왼쪽 능선에 암봉인 별학산이 보인다.
내리막 경사가 꽤 급한 데다 너덜지대여서 주의해야 한다. 오른쪽에 또 하나의 웅장한 암벽이 호위하듯 솟아 있어 어깨가 으쓱해진다. 암벽 밑을 통과하면 왼쪽의 날카로운 바위 능선 뒤로 난 평탄한 등산로를 따라 20분 만에 임도와 파고라 쉼터가 있는 사스목재에 닿는다. 임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가면 사동마을, 왼쪽은 앙천잇재를 거쳐 철쭉공원으로 향하거나 천등마을로 내려서는 길로 이어진다.

파고라 뒤쪽 능선길을 따르면 별학산까지 이어지지만 파고라 옆 안내판 왼쪽에 열린 산길을 따라 내려선다. 작은 무덤을 지나 7분 뒤 다시 임도와 만나는데 이 지점부터는 줄곧 임도를 따른다. 20분 정도 여유 있게 걸으면 천등마을을 거쳐 산행 출발지인 송정교 옆 버스정류소에 도착, 원점회귀 산행을 마무리한다. 천등마을을 지나며 왼쪽의 월각산을 바라보면 정상 아래에 뻥 뚤린 월각문이 확연히 드러난다.

◆ 떠나기 전에

-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과욕 부린 별학산, 결국 벼락 맞고 바위가 깨졌다는데…

고흥 천등산(天登山·553.5m)의 이름과 관련,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우선 공식 지형도에 기재된 한자 표기에서처럼 '하늘로 오르는 산' 또는 '봉우리가 하늘에 닿을 듯한 산'이란 뜻에서 유래됐다는 설. 이 이야기는 풍양면 송정리 송정마을과 천등마을 주민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과 연관돼 있다. 이야기를 들어보자. 현재의 천등산과 그 서쪽의 별학산(別鶴山·342m·일명 벼락산)이 서로 하늘 높이 올라 가겠다고 경쟁을 했다. 매일 밤이 지날 때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겨루던 형국. 그런데 별학산이 너무 욕심을 부리면서 바위 높이를 매일 밤 키워서 천등산보다 훨씬 높아지게 됐다. 그러자 하늘에서 별학산의 탐욕을 꾸짖기 위해 벼락을 내려 바위를 부쉈고 승부는 천등산의 승리로 끝났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별학산을 바라보면 정상부 암봉이 정말로 벼락 맞아 깨진 것처럼 보인다. 산 이름 역시 '벼락산'의 한자식 표기라는 것. 그런데 별학산은 풍수지리적으로 '호랑이 상'에 해당돼 그 산자락에 묏자리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또 호랑이가 입을 크게 벌린 형상을 한 별학산 암봉 아래 위치한 천등·송정마을에서는 좀처럼 '큰 인물'이 나지 않고 있으며 '호랑이 등'을 탄 산 너머 사동마을 출신 중에는 '큰 인물'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와 별도로 천등산을 '천 개의 등불이 빛나는 산'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남동쪽 골짜기에 자리 잡은 금탑사를 비롯한 산자락의 많은 절에서 스님들이 밤마다 등불을 들고 산에 올라 수도했는데 그 광경이 마치 천 개의 등불이 반짝이는 것 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한자 표기를 '일천 천(千), 등잔 등(燈)'으로 해야 마땅할 것 같다.

한편 금탑사(金塔寺)는 신라 선덕여왕 6년(637년)에 창건된 천년고찰로 천연기념물 제239호인 비자나무숲으로 유명하다. 33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으며 봄에 꽃을 피운다. 산행 후 들러볼 만하다.

◆ 교통편

- 부산서 고흥행 시외버스 오전 8시50분 출발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고흥행 시외버스는 오전 8시50분, 9시50분, 10시50분 등 하루 7회 출발한다. 3시간40분 소요, 요금 1만7400원. 고흥버스터미널에서는 풍남행 군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송정리 송정마을정류소에서 하차한다. 오전 6시50분부터 오후 7시50분까지 1시간 간격으로 하루 14회 운행한다. 고흥에서 부산행 막차는 오후 4시. 이 차를 놓쳤을 경우 고흥에서 순천으로 이동한 후 다시 부산행 버스를 타면 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를 경유해 호남고속도로 승주IC에서 우회전한 후 지방도 857번을 타고 벌교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벌교읍에서 고흥 방면 국도 15호선을 고흥읍까지 간 후 녹동 도양 방면으로 국도 27번을 탄다. 상림교차로에서 풍양면사무소 방면으로 내려 좌회전, 27번 국도 밑을 통과한 뒤 하림삼거리에서 풍남 방면으로 다시 좌회전해 5㎞가량 가면 송정리 송정마을에 도착한다. 버스정류소에서 송정마을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 해 100m만 가면 풍안경로정 앞에 주차 공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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