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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일보 등산지도/◈ 부산일보 경남

합천 미녀봉

by 강릉벽소령 2014. 10. 31.

 

 

미녀의 코·입·가슴 위로 사뿐사뿐… 하산길엔 '쭉빵' 숲길

 

 

 

 

 

 

아득한 옛날 경남 거창군 가조면과 합천군 묘산면 일대는 바다였다. 어느 날 한 장군이 탄 나룻배가 파도에 휩쓸려 표류하고 있었다. 하늘에 있던 옥황상제가 장군을 불쌍히 여겨 딸 중에서 가장 도력이 뛰어난 맏딸을 땅으로 내려 보냈다. "가서 그를 구하라!" 아비의 명을 받은 딸은 무사히 난파 직전의 배에서 장군을 구했다.

대개 이런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로 흐르는 법. 장군은 첫눈에 반한 천녀(天女)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둘 사이에 불같은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지만 옥황상제 가슴 속에는 노여움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대로한 옥황상제는 "괘씸하다. 너희 둘은 영원히 산으로 누워 있으라"는 형벌을 두 사람한테 내리고 만다.

그때 돌산으로 된 장군이 누운 봉우리가 우두산 서쪽 능선에 있는 장군봉(956m·경남 거창군 가조면)이다. 천벌을 받은 장군이지만 산이 되어서도 미련을 못 버려서일까? 이 장군봉에서 동남쪽으로 7.7㎞쯤 떨어진 곳에 장군이 사랑한 천녀가 하늘을 보고 누워 있다. 바로 미녀봉(문재산·931m)이다.

미녀가 누운 모습의 능선
높은 산에 밀려 주목 못 받아

금실 좋아진다는 유방샘
오도산 자연휴양림도 매력

아련한 전설이 서린 미녀봉이지만 산꾼들한테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한 산이었다. 1,000m 이상의 고산이 10여 개가 넘게 있는 '산의 고향'인 거창에 있다 보니 일단 산 높이에서 다른 산에 밀렸다. 거기에 백두대간에서 불거진 수도지맥에서 살짝 비켜 있다 보니 지맥 종주꾼들도 외면했다. 오도산(1,120m)과 연결한 등로가 있지만 오도재부터 시작한 호된 된비알 탓에 산행할 엄두를 쉬이 못 냈다. 이름만 미녀였지 산꾼들한테 주 산행지보다는 경유지, 혹은 멀리서 바라만 보는 산이었다. 다행히 최근에 일부 산악회가 미녀봉 서남쪽의 숙성산(900m)을 연결한 속칭 '숙성미녀' 코스를 엮어 산에 오르면서 조금씩 그 진가가 드러나고 있다.

'산&산'은 미녀봉 단독 코스와 오도산 자연휴양림을 연결한 단출한 코스를 꾸며봤다. 미녀의 눈썹·코·입·유방을 따져가며 산을 밟는 재미가 있다. 수도지맥의 우두산, 비계산과 가야산을 보는 탁월한 조망미도 있다. 산행 끝날 즈음에는 1㎞가량의 운치 있는 솔 휴양림도 만난다.

코스는 기점인 휴양림 관리사무소를 출발, 등산로 입구 이정표~말목재~744봉을 지나 미녀의 눈썹·코·입술을 지나 유방봉을 지난다. 이후 안부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 미녀봉에 닿는다. 869봉에서 오도재에서 꺾어 휴양림을 지나면 사실상 산행이 끝난다.

산행 구간 약 8.5㎞로 식사시간을 포함해 4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몇몇 봉우리가 날카롭지만 설치된 계단과 밧줄로 극복할 수 있어 가족산행도 무리가 없겠다.

기점은 오도산 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다. 7~8월 성수기에는 1인당 1천 원의 시설사용료를 받는다. 정문을 지나 10분 정도 오르면 미녀봉 등산로 푯말이 보인다. 왼쪽으로 꺾는다. 등산로 부근에 식수를 보충할 취사장이 있다.

3분 정도 언덕을 오르면 금색 가로등에 등산로 푯말이 걸려 있다. 가로등 오른쪽 길로 진입한다. 참나무 낙엽들이 길바닥에 깔렸다. 발을 뗄 때마다 낙엽 밟히는 소리가 요란하다. 섭씨 3~4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귓불이 제법 얼얼하다.

가로등에서 10여 분 정도 느슨한 오르막을 걸으면 소방 구조 표지목이 나온다. 표지목에서 다시 10분 정도 가면 말목재가 나온다. 말을 키웠다는 설과 지형이 말목처럼 생긴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재에서 왼쪽으로 1.9㎞쯤 오르면 숙성산이 나온다.

말목재부터 미녀봉 주능선을 탄다. 거창군 가조면과 합천군 봉산면이 능선을 경계로 나뉜다.

바위 몇 개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순한 오르막이다. 솔가리도 풍성해 길이 푹신하다. 말목재에서 20여 분 외길을 걸으면 744봉 전망대다. 잠시 서서 미녀봉을 바라본다. 오른쪽으로 하늘이 열린 곳에 오도산 줄기가 오롯하다. 산정의 민간 통신 시설이 멀리서 보니 철로 만든 '성곽' 같다.

전망대에서 안부로 내려섰다. 사실, 미녀봉은 합천 봉산면이나 묘산면보다 거창 가조면에서 제대로 된 조망을 선사한다. 가조면에서 보면 이 지점부터 미녀가 머리카락을 펼친 것처럼 보인다.

나무계단을 밟고 눈썹바위(780m)에 올랐다. 별 특징 없는 널따랗고 각이 있는 바위가 삼거리 한쪽에 앉아 있다. 여기서 왼쪽으로 600m가량 내려가면 유방샘이 나온다. 급한 내리막길이고 고도가 200m쯤 뚝 떨어지기에 대부분 산꾼이 입맛만 다시고 지나친다. 그러다 보니 일부 산행지도에는 실제 답사가 아닌 추정으로 유방샘을 표시해 샘 위치를 헷갈리게 한다. 바로잡을 건 바로잡자. 산행팀은 두 팀으로 나눠 한 팀을 유방샘(눈썹바위에서 30분 정도 소요)으로 내려 보냈다. 이정표가 있지만 방향이 애매해 산행리본을 충분히 달아놓았다. 참고로 유방샘은 미녀봉의 유방봉 줄기와 산자락이 만나는 틈에 있다. 마을 사람들은 남자가 샘물을 마시면 금실이 좋아지고, 아이 없는 여성이 마시면 아이가 생긴다고 한다.

눈썹바위에서 암릉을 지나 5분 정도 가면 미녀의 코 부분이다. 여기에서 유방봉을 보면 날카로운 바위 봉우리 두 개가 하늘을 향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코 부분에서 입술 쪽으로 계단을 이용하고 암릉을 우회해야 한다. 가조면에서 이곳을 보면 입을 벌린 모습이다. 어찌 보면 놀란 것 같고, 또 어떻게 보면 탄성을 지르는 모양새다.

계단을 올라 유방봉에 도착했다. '유방'이란 말에 에로틱한 상상을 했다면 헛물을 켜기 십상이다. 예리한 돌부리 더미가 앙칼지게 박혀 있다. 유방봉에서 서쪽을 보면 수도지맥 분맥인 양각지맥의 보해산~금귀산~박유산~일산봉이 뚜렷하게 보인다.

유방봉에서 안부로 내려선다. 일부 산꾼이 이 지점부터 미녀의 배꼽과 불두덩이 시작된다고 하는데, 거창군지와 합천군지를 살펴봐도 전혀 근거가 없는 '억측'과 '바람'일 뿐이다.

안부에서 893봉까지는 10분 정도 오르막길, 여기서 15분 정도 더 가면 미녀봉이다. 이 산의 예전 명칭인 문재산과 병기된 표석이 서 있다. 주변이 나무로 막혀 답답한 편이다.

조망은 차라리 미녀봉에서 20분 남짓 능선을 직진하면 나오는 869봉이 낫다. 가야산으로 달려가는 비계산~두무산 줄기가 하늘과 맞닿아 있다. 그 뒤로 가야산 정상의 잿빛 성화석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869봉에서 100m쯤 내려오면 갈림길이 나온다. 독도에 주의해 오도재 방향으로 내려와야 한다. 갈림길에서 오도재까지는 15분 정도. 오도재에서 오도산을 올려다보니 아까 성곽처럼 멋있게 보이던 통신시설들이 흉측스럽다.

오도재부터는 휴양림 구간이다. 소나무 조림지역이라 '쭉쭉 빵빵' 소나무가 하산길을 열어준다. 그늘이 좋고, 숨을 들이쉬면 기분도 좋다.

15분가량 휴양림 속을 거닐면서 내려오면 소원탑이 있다. 돌 한 개를 올려놓고 귀갓길의 무사를 기원한다. 소원탑부터는 휴양림 시설들이 잇따라 나온다. 사방댐을 이용한 수영장과 나무 데크를 활용한 야영장, 숲속의 집들이 눈에 띈다. 소원탑부터 기점인 관리사무소까지는 넉넉잡아 20분 정도 걸린다.

 

원점회귀 산행이고 미녀봉 주변에 있는 합천호와 합천영상테마파크도 가볼 만하다. 자가운전을 권한다. 남해고속도로 칠원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고령분기점에서 광주·함양 방면으로 진입한다. 이후 88올림픽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해인사IC에서 빠져 합천·야로 쪽으로 좌회전한다. 24·26번 국도를 타고 분기삼거리~묘산교차로를 통과해 16㎞쯤 가면 권빈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우회전해 3.7㎞쯤 가면 오도산자연휴양림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요금 2천 원. 내비게이션에 '오도산자연휴양림'으로 검색하면 된다.

산행이 끝나면 따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묘산면에 있는 '합천토종돼지'(055-931-1131)는 직접 사육한 돼지로 요리한다. 얼큰한 돼지김치찌개(6천 원)와 뼈다귀국밥(5천 원)이 맛있다. 일행이 서너 명 정도라면 쪽갈비찜(4만 원)도 괜찮겠다. 다 먹으면 남은 양념으로 밥을 볶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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