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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신문 등산지도/♣ 국제신문 경남

산청 왕산/ 필봉산

by 강릉벽소령 2014. 10. 31.

 

 

가락국 최후의 왕, 그도 저 능선 보며 제국부활 꿈 꿨을까

 

 

 

'민족의 영산' 지리산 자락의 동북쪽 끝에 솟아오른 왕산과 필봉산은 정상 사이의 거리가 불과 1㎞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탓에 일반적으로 한꺼번에 묶어서 산행을 하게 되는 형제산이라 할 수 있겠다. 내친 김에 서열을 정해보자면 해발도 높고 산세도 후덕해 보이는 육산인 왕산을 형으로, 날렵하고 재기발랄함을 갖춘 암봉인 필봉산을 동생으로 삼는 것이 무리가 없겠다. 특히 가락국(금관가야) 10대 왕이자 가야제국 최후의 왕인 양왕(구형왕)과 그 증손자 김유신 장군에 얽힌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와 유적을 품고 있는 왕산이다 보니 아무래도 두 산 가운데는 형님산으로 대우해 줘야겠다. 그 뿐인가. 왕산은 조선 건국에 반대한 고려의 충신 '두문동 72인'의 한 사람인 농은 민안부의 충절이 서려 있는 망경대를 품고 있고 허준의 스승인 조선 중기의 명의 류의태가 머문 산이기도 하다.

왕산에 전해져 오는 양왕의 이야기는 여전히 역사와 전설의 경계에 머물러 있는 듯하지만 어찌 알겠는가. 늘 역사는 승자의 편이었으니. 우리가 알고 있는 전설이 사실은 역사적 진실이고, 우리가 배워서 아는 역사는 진실을 감추기 위해 승자가 던져 놓은 눈가리개에 불과한 것일지. 역사 속 패자인 한 왕의 이야기가 천 년 넘게 살아 있는 왕산으로 사색 산행을 떠나보자.

전체 코스는 구형왕릉 주차장(김유신 사대비)~구형왕릉~계곡 갈림길~임도~수정궁터~류의태약수터~삼거리~망경대~망바위~가짜왕산~왕산~여우재~필봉산~깨진바위~안부 갈림길~광구계곡~전통한방관광유원지~특리교로 이어지는 10.5㎞다.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4시간30분. 산행 전 들른 덕양전과 산행 시작 후 만나는 구형왕릉, 수정궁터, 류의태약수터, 망경대 등의 명소까지 둘러 보려면 넉넉 잡아 6시간은 잡아야 한다.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덕양전 앞에서 구형왕릉 쪽으로 500m가량 오르면 넓은 주차장이 나온다. 본격적인 산행 출발점이다. 왕릉 쪽으로 30m만 가면 오른쪽에 '김유신 사대비(射臺碑)'가 있다. 김유신이 어린 시절 자신의 증조부인 구형왕의 무덤 앞에서 수 년간 시묘살이를 하며 활쏘기를 연마하던 곳이다.

넓은 길을 따라 3분만 오르면 오른쪽 다리 건너편에 거대한 돌무덤이 보인다. 사적 제214호인 구형왕릉(仇衡王陵). 높이 7.15m짜리 이 무덤은 돌을 7단으로 쌓아 올린 피라미드형 구조를 하고 있다. 무덤 앞에는 '가락국양왕릉'이라 적힌 비석과 문무인석상(文武人石像)과 석수(石獸) 등이 세워져 있고 돌담이 이 모두를 감싸고 있다. 1500년에 가까운 세월의 흔적이 돌담과 돌무덤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다시 다리를 건너오면 오른쪽으로 등산로가 열린다. 5분쯤 오르면 갈림길. 망경대 방향으로 직진하지 않고 류의태약수터를 들르기 위해 오른쪽 작은 계곡을 건넌다. 적송이 울창한 한적한 숲길. 10분 뒤 닿은 임도에서 오른쪽으로 임도를 따라 10분쯤 더 오른다. 고로쇠나무가 지천이다.

10분 뒤 수정궁터 앞에서 임도와 작별하고 왼쪽 산길로 접어든다. 1차 발굴이 완료된 수정궁터에는 4개의 사리탑이 서 있다. 가락국 패망 이후 양왕이 칩거했다는 수정궁은 원래 가락국의 별궁이었다고 한다. 옛 영화는 간데없고 세월의 흔적만 기와와 토기 파편에 남아 있다.

2분만 더 오르면 약수터 앞 갈림길이다. 오른쪽 능선길은 왕산 정상으로 오르는 최단거리 길이고 왼쪽으로 20m만 가면 약수터다. 이 약수터의 물은 조선 중기의 명의(名醫) 류의태가 왕산에서 채취한 산약초로 탕약을 만들 때 사용한 약수로 전해지고 있다.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히 효험이 있다고 한다.

   
필봉산에서 하산하던 도중 만난 바위. 7 조각으로 나눠져 있는 이 바위에 취재팀이 '필봉 깨진바위'라는 이름을 붙여 봤다.
약수터에서는 왼쪽의 '망경대 1.1㎞' 이정표 방향으로 진행한다. 철망 옆을 따라 능선 사면을 휘돌아 가는 길이다. 20분가량 아주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중간 중간 짧은 너덜지대.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 닿으면 능선을 따라 오른쪽 오르막으로 진행. 200m만 오르면 바위 위에 '망경대(望京臺)'라 적힌 비석이 보인다. 경치 경(景)자가 아니라 서울 경(京)자를 쓴 것에서 그 내력을 더듬어 볼 수 있다. 고려 공양왕 때 예의판서를 지낸 농은(農隱) 민안부(閔安富) 선생이 조선 건국에 반대해 산청군(당시 산음현)에 칩거해 살면서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이곳에 올라 정북 쪽인 개경을 향해 절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곳 또한 패망한 왕국의 아픔이 서린 곳이다. 북쪽 멀리 황석산과 기백산이 보인다.

15분가량 더 오르면 '강쇠약수' 갈림길이다. 능선에서 왼쪽으로 30m만 내려서면 옹달샘이 있다. 능선으로 돌아와 10분쯤 가면 갈림길. 왼쪽은 한방휴양지로 내려가는 길이지만 계속 직진. 10분 후 사방이 탁 트이는 '망바위'에 닿는다. 진행 방향에서 몸을 틀지 않고 정면으로 보면 먹물을 듬뿍 머금은 붓을 닮았다는 필봉산이 그 날씬한 자태를 드러내고 그 너머로 지리산 능선의 동쪽 끝 봉우리인 웅석봉의 웅장한 모습이 드러난다. 망바위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진 능선에는 '가짜 왕산'과 왕산이 연이어져 있고 왕산 정상 뒤로는 지리산의 주봉인 천왕봉이 천하를 호령하는듯한 모습으로 우뚝 솟아 있다.

   
산행 들머리 부근에 있는 돌무덤인 구형왕릉.
망바위에서 왕산 정상까지는 사방으로 탁 트인 멋진 조망을 즐기며 달릴 수 있는 평탄한 능선길. 발길 내딛는 모든 곳이 전망대요 쉼터다. 10분 후 닿는 가짜 왕산에는 한글로 '왕산'이라 적힌 정상석이 있다. 해발 923m라는 높이도 표기돼 있다. 하지만 실제 이 봉우리의 높이는 905.8m. 좀 더 가면 큰 소나무 아래 비박지가 나타나고 곧바로 갈림길. 오른쪽으로 가면 류의태약수터로 바로 내려갈 수 있다. 직진해 억새와 싸리나무 군락지를 통과하면 5분만에 왕산 정상에 닿는다. 한자로 '왕산(王山)'이라 적힌 정상석에 923.2m라고 표기돼 있다. 정상석 등 뒤로 천왕봉이 기세 등등하게 다가서고 왼쪽으로는 필봉산이 우뚝 서 있다. 웅석봉에서 중봉,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병풍 같은 지리산의 동부 능선도 한눈에 든다. 지리산 주능선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산으로 남부에서는 하동 삼신봉, 북부에서는 함양 금대산 삼봉산 삼정산 등이 꼽히지만 동부 능선을 가장 멋지게 조망할 수 있는 산으로 이곳 왕산을 최고로 꼽을 만 하겠다. 눈길을 천왕봉에서 오른쪽 아래로 내려보면 함양 독바위 능선이 뚜렷하고 그 아래에 임천강이 흐른다.

정상에서 오른쪽 내리막은 쌍재로 가는 길이지만 필봉산을 향해 왼쪽 내리막을 택한다. 전망대를 지나 15분 후안부 갈림길인 여우재. 전망대 팔각정 이정표가 가리키는 왼쪽 길은 계곡을 따라 하산하는 길이지만 필봉산을 향해 직진, 오르막을 탄다. 15분 후 커다란 암봉인 필봉산 정상. 이곳 정상석 역시 지리산 천왕봉을 등지고 있다. 김원진 대장은 "왕산과 필봉산 모두 천왕봉을 주산으로 섬긴다는 뜻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바위 틈에서 솟아난 물이 맑고 차가운 류의태약수터.
하산길은 진행 방향 능선 내리막으로 잡는다. 잠시 후 오른쪽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찔하다. 천길 낭떠러지 바위 틈새에 뿌리내린 작은 소나무가 천왕봉 방향으로 뻗어있는 모습이 신비롭다. 길을 재촉하면 3분 뒤 갈림길. 오른쪽은 향양리로 내려서는 길이지만 11시 방향으로 직진한다. 바위 옆으로 안전 철선이 확보된 암릉구간을 지나 5분 쯤 가면 능선상에 우뚝 선 바위를 만나는데 신기하게도 7조각으로 나눠져 있다. 취재팀 중 누군가 "김유신 장군이 칼로 쪼개셨나"라며 농담을 한다. 이 바위에 '필봉 깨진바위'라는 이름을 붙여 본다. 이제 10분이면 본격적인 안부 갈림길. 직진하면 왕복사로 하산하는 길이지만 취재팀은 '강구폭포 1.7㎞' 이정표가 가리키는 왼쪽 계곡으로 길을 잡는다.

10분 정도 내려서면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낙엽송과 전나무가 우거진 숲 사이로 15분쯤 더 내려가면 Y자 모양으로 길이 갈라지는데 왼쪽 길인 누군가 쌓아 놓은 나뭇짐에 의해 막혀 있다. 어쩔 수 없이 오른쪽 길을 따른다. 곳곳에 산약초 재배지가 산재해 있다. 10분 후 계곡 바닥에 닿는다. 굴삭기가 한창 공사중이다. 한방휴양관광지 조성과 연계한 공사인 듯하다.

계곡을 가로지른 후 건너편 구름다리를 지나 200m만 가면 한방휴양지의 일부인 본디올 한의원 앞에 닿는다. 날머리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른쪽 내리막으로 50m 정도 가면 60번 지방도가 지나는 특리교 다리. 그 아래에 광구폭포가 있는데 유량은 많지 않다.

◆ 떠나기 전에

- 구형왕릉 축조 수수께끼 풀려 당당히 역사의 한페이지 장식할 수 있을지

경남 산청의 왕산은 그 이름의 유래부터 '왕이 머물렀던 산'이라고 해서 붙여졌을 만큼 가락국 최후의 왕인 양왕(구형왕)과 연관된 유적과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무덤으로 향하는 도로 표지판에는 '전(傳) 구형왕릉'이라고 표시돼 있다. '~라고 전해진다'는 의미를 가진 '전(傳)'이라는 글자를 떼어내고 역사적 사실로서 인정받아 온전한 왕릉으로 대접받을 수는 없을까. 양왕과 그의 왕비를 모시고 음력 3월과 9월에 제례를 지내고 있는 덕양전 관리인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한다. 그는 양왕이 신라에 나라를 빼앗긴 후 본래 별궁이었던 왕산 자락의 수정궁으로 거처를 옮겼던 사실과 그의 사후 수정궁터에 왕산사라는 절이 들어섰다고 전해지는 것은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조선 말기 고산자 김정호가 작성한 대동여지도에도 왕산사가 표기돼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왕산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 정조 17년(1793년)에 이 절이 오랫동안 보관해 오던 나무상자에서 발견된 왕과 왕비의 초상화와 활 칼 옷 등의 유품도 진짜라는 것. 현재 덕양전에서 보관중이다. 그러나 '패자를 기억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역사 서술의 풍조가 만연했던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보면 구형왕릉이 국내 유일의 피라미드형 왕릉으로 정식 인정 받기까지는 풀어야할 숙제도 만만치 않을 듯 하다. 왕릉 제작과정의 수수께끼를 풀어줄 기록이나 증거가 좀 더 필요한 듯 하다. 다만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공식 2만5000분의 1 지형도에는 '전'자를 빼고 '구형왕릉'으로 표기돼 있다는 사실은 덕양전 관리인 김씨에게 작으나나 위안거리다. "나라를 잃은 죄와 원통함이 이리도 큰데 내 어찌 편히 흙에 묻히겠는가. 나의 무덤은 돌로 만들어라"고 말했다는 전설같은 양왕의 마지막 말이 역사적 사실로 되살아나기를 기대해 본다.

한편 덕양전과 김유신 사대비 등에는 최근 드라마 '선덕여왕'의 인기 덕분인지 방문객이 늘고 있다.

◆ 교통편

- 산청읍에서 덕양전까지 버스 하루 7회 운행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산청읍을 오가는 버스는 오전 5시40분부터 오후 7시41분까지 8~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2시간 소요. 1만600원. 산청버스공용터미널에서 산청교통 소속 군내버스로 갈아 타면 금서면 화계리 덕양전 앞에 하차할 수 있다. 오전 8시30분, 10시, 11시20분, 12시20분 등 하루 7회 운행하며 요금은 1600원. 20분 소요. 산행 후 날머리인 한방휴양관광지 인근 특리교에서는 오후 3시40분과 6시10분에 산청읍으로 가는 군내버스를 탈 수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를 거쳐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산청IC에서 내린 후 삼거리에서 우회전, 60번 지방도를 타고 휴천 마천 방면으로 15분정도 가면 금서면 화계리에서 '전 구형왕릉' 표지판과 덕양전을 만난다. 덕양전을 둘러보고 500m가량 구형왕릉 쪽으로 가면 주차장이 있다. 산행 후 차량 회수를 위해서는 특리교에서 화계리 방향으로 가는 군내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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